70년대 초 중반 어느해 겨울, 해 넘어가기 전이었다. 춥다. 눈이라도 내릴 날씨.
큐비즘 단상 하나. 옛날에 어렸을 때 이맘 때쯤 차디찬 마루에 서서 발꼬락은 꼼지락 꼼지락. 언 손으론 들문을 낑낑 들어 올리려니 이리 뒤뚱. 저리 뒤뚱. 들문 가지고 그렇게 할위(爲)? 있는 힘을 다해 받치고 보드시 버티고는. 더 위로, 더 위? 매를 맞아 가며 문으로 벌을 서야 했다. 안 아픈 손가락이 없었다.
큐비즘 단상 둘. 들문에 으랏차차는 대여섯살 정도 무렵에나 하는 것. 기우뚱 기우뚱. 그렇게 할위(爲). 이를 악물고 버티기. 위(謂) 더 높이 들어. 어서. 꼭 벌서는 거와 같다. 깨금발 까치발에 갸우뚱. 더 들어요? 아니 더 들고 있어. 이를 악물고 참기. 후들들. 후덜덜.
그게 다섯, 여섯 살 무렵이었다. 내 기억으론 아마 1973년 아니면 1974년, 학교 가기 전 그해 겨울로 생각된다.
여기서 큐비즘 단상이라 함은 똑같은 사건에 각각 다른 생각을 말함.
그렇게 할위?
문을 들고 있는 게 힘들어, 머리로 문을 받치고 양손으로 문을 붙잡고 있으니..!? 그렇게 할위(爲)? 냅다 두손 들어! 시키는 대로 아무 말 없이 낑낑대며 다시 힘 주어 두 손을 들었다. 더 들어. 더 위(上). 더 위(謂)로. 더. 거기다가 까치발 까지. 얼마 후 중심을 못잡고 이리 저리 갸우뚱. 기우뚱. 그걸 애써 보드시 참아내니라 힘들었다.
더 위로. 더 위. 더 들어. 무언가 가늠하고 맞춰 보시고는.. 이제 그만 됐다. 내려. 손 내려. 휴-. 문 드니라고 죽을 뻔 했다.
여차이 여랏차차는 해보질 않아서. 아니다.. 아래 문고리를 힘주어 끌을 때 힘이 딸리면 으랏차차 차. 힘이 덜 딸리면 여랏차차, 여차이.
요즘 아이들은 이런 소릴 못한다. 아무래도 문화가 바껴서 그런 듯.
헌공께선 들문을 들을 때에 여차이이의 여이의. 여기에 약간의 오해가 있을까 봐서? 헌공은 문헌공 공이 아님을 밝혀둡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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